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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선생님, 학교 다닐 때 저희 아닙니다"

금요일 퇴근 무렵. 20년 전 내가 3학년 담임을 했던 우리 반 실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제자는 전화에서 지난 스승의 날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며 주말을 이용해 식사대접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괜한 부담을 주는 것 같아 극구 사양했으나, 제자는 부담 갖지 말라며 약속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었다.


사실 그날 밤, 졸업 후 20년 만에 만날 제자 생각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책장 깊숙이 보관해 둔 빛바랜 앨범을 꺼내 앨범 속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리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돌이켜 보면, 실장을 비롯해 열 명의 아이들 때문에 하루라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은 실장 OOO는 나잇값을 제대로 못 해 선생님으로부터 핀잔을 많이 받곤 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워 학생부에 밥 먹듯 불러 간 OOO. 가출하여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아 담임과 부모님 속을 썩인 OOO. 시험만 보면 성적이 떨어졌다며 책상에 엎드려 울곤 했던 OO.


1교시 수업시간을 단 한 번도 지키지 않은 우리 반 지각 대장 OOO. 이성 친구와 헤어져 자살을 시도했던 OOO. OO는 시내 옷 가게에서 옷을 훔치다가 들켜 경찰서에 붙들려 간 적이 있었다. 야간자율학습을 하기 싫어 감독교사 몰래 도망치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진 OOO. 빈 가방을 메고 등교하여 수업시간 잠만 자고 하교하는 ‘가방맨’ OOO. 모델이 꿈이라며 매일 화장하고 다녀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이 ‘화장발’인 OO.


우리 학급은 이 아이들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참다못해 담임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고, 학급 아이들 또한 반을 옮겨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매년 5월이면 이 아이들이 그리워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끔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할 때도 있다. 아마도 그건,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더 많이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실장이 내게 전화를 했다.


토요일 오후 1시. 실장이 일러준 약속 장소로 갔다. 식당 문을 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실장이 다가와 넙죽 인사를 했다. 그리고 실장은 예약한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방문을 여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창시절 내 속을 그렇게 썩였던 열 명의 아이들이 나를 보자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반겨주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제자들의 얼굴은 학창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실장은 먼저 준비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며 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합니다. 그리고 저희를 졸업시켜 줘서 감사합니다."


모든 아이가 자리에 앉자, 이 자리를 주선한 실장이 오늘 만남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잠시 뒤, 준비된 식사를 하면서 아이들은 지난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이들은 한 명씩 그때 당시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하며 용서를 구했고, 선생님 덕분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며 내게 감사를 표현했다. 그리고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현재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아이들 모두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사회에서 성공한 제자도 여럿 있었다.


사실 담임인 나를 포함해 당시 문제아로 찍힌 요 녀석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그런데 우려와는 달리 제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다닐 때의 문제아가 사회에 나가서도 제구실을 못 한다는 고정관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제자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며 아이들과 포옹으로 아쉬운 작별을 했다. 아이들과 짧은 만남을 통해 지난 교직 생활을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문제아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식당을 나와 멀어져 가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학창시절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그때 좀 더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