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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얼마 전 반가운 뉴스를 들었다. 우리나라 산사(山寺) 몇 곳(부석사, 대흥사, 법주사, 통도사)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다는 내용이다. 반가운 일이다. 절의 고즈넉함이 주는 청신함은 굳이 불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에게 오아시스와 같다. 더구나 절이 산에 있으니 절을 찾아가는 길에 맑은 공기를 쐬고 푸른 숲을 보면 이미 정신이 말끔해진다. 서산 개심사 입구의 세심교(洗心橋)는 그런 점에서 이름과 실제가 딱 맞는 곳이다. 
 
그러나 즐거운 소식에도 걱정은 든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많아지면 그 고즈넉함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미 몇몇 절은 유명세를 타면서 도시의 번잡스러움이 옮겨온 것 같다. 혹시 세계유산이란 이름값이 더해지며 다른 절에도 그런 현상이 생기지 않을까.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의 유명한 절은 대체로 산에 있어서 절을 찾은 이가 자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더운 여름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절을 목적지로 삼은 사람들에게 숲길을 걷는 시원함은 또 하나의 선물과 같다. 절은 그 내력 또한 만만치 않다. 당연히 절을 연 스님인 조사(祖師)를 비롯해 여러 스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만 뜻밖의 사람도 만날 수 있다. 자연 덕분에 마음을 비웠다면 절에 깃든 역사 속 인물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건 어떨까.

법주사, 오리숲과 세조
 
충북의 유명한 절이며 미륵도량으로 널리 알려진 절, 보은 법주사다. 우리나라에 하나 밖에 없는 목탑인 팔상전으로도 유명하다. 처음 절이 세워진 내력도 재밌다. 신라 진흥왕 때 천축(인도)에서 불법을 닦은 의신조사가 흰 나귀에 불경을 싣고 절을 지을 곳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의 법주사 근처에 도착한 나귀가 더 나아가지 않고 뱅뱅 돌았다. 의신조사는 그 장소에 절을 지었으니 바로 법주사다. 그래서 불법(法)이 머무는(住) 절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절을 품은 산은 세속과 떨어진 산, 곧 속리산(俗離山)이 됐다.
 
절로 가는 숲길 역시 대단하다. 참나무와 전나무, 소나무가 어우러진 숲길의 길이가 무려 5리나 된다고 해서 ‘오리숲’으로 부른다. 주차장과 절 아래 마을의 어지러움은 이 숲을 지나면서 먼지가 떨려나가듯 사라진다. 법주사 인근에는 절 만큼이나 유명한 문화재 하나가 있는데 바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정이품송’이다. 비록 600여 년 시간에 풍상과 병마를 이기지 못해 한쪽이 상했지만 여전히 기품을 자랑하는 멋진 소나무다. 
 
정이품이라 하면 조선시대 벼슬 가운데 지금의 장관격인 판서의 품계와 같다. 당상관을 넘어 재상의 범주에 드는 관직이다. 소나무가 이처럼 높은 벼슬을 받은 이유는 전설로 전해진다. 세조가 법주사를 찾았을 때 가마(연:輦)를 탔는데 나뭇가지에 걸릴 뻔 했다. 그때 사람들이 다급히 ‘연이 걸린다’고 소리를 치자 소나무가 가지를 들어 올렸다고 한다. 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벼슬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전설은 소나무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세조가 특별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미물인 소나무마저 왕의 위엄을 지키려 했던 것이니. 그렇다면 세조가 위대한 임금이라서 일까. 하지만 세조가 누구인가. 조카인 단종을 멀리 영월로 쫓아낸 뒤 죽이고 또 여러 충성스런 신하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당시 사대부나 백성들의 세조를 향한 여론이 어땠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왕에게는 무언가 권위를 살려줄만한 일이 필요했을 것. 그런 점에서 법주사의 정이품송이 등장한 것은 아닐까. 

세조의 기이한 행적은 오대산 상원사에서도 전해진다. 고양이가 자객의 존재를 알리거나 문수보살이 세조의 등을 닦아줬다는 얘기가 그러하다. 억불숭유의 이념이 조선을 채웠음에도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원각사를 지은 이가 바로 세조다. 불교와 자연에 기대고자 했던 세조의 모습을 법주사에서 봤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이 될까. 법주사 오리숲을 걸으며 화두 하나를 머리에 담아본다.



금산사, 산성과 견훤

전북 김제, 모악산 아래 금산사는 거창한 규모로 유명하다. 백제 때 이미 절이 있었고 통일신라 때 진표율사가 법회를 열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지금 금산사는 다른 절에서 보기 드문 3층 모습의 미륵전과 우리나라 불교의 판테온이라고 할 만한 대적광전이 있다. 절에 이르는 숲길도 좋다. 산 속 깊은 절이 아님에도 주차장에서 절에 이르는 길은 10여 분 이상 걸린다. 중간에는 야영 공간도 있다. 길을 걷다보면 눈에 띄는 유적이 하나 있다. 성문이 있고 성벽이 이어지는데 그 성을 ‘견훤석성’이라고 안내판은 적고 있다.
 
견훤, 바로 후백제를 세운 인물이다. 생각해보면 김제와 맞닿아 있는 전주가 후백제의 도읍지가 아닌가. 견훤에게 금산사는 중요한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금산사는 미륵도량이다. 미륵불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부처님이다. 신라 시대를 끝내고 백제가 중심이 되는 세상을 위한 사상으로 견훤에게는 미륵불만한 존재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추상적인 이미지만 갖고 있는 곳은 아니다. 바로 견훤이 이 건물 지하에 갇힌 사건이다. 물론 지금 미륵전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지었으니 본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장소만큼은 당시와 같다. 후삼국시대를 열고 또 그 시대를 주도했던 영웅인 견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바로 넷째 아들 금강을 태자로 삼은 것이 문제였다. 견훤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었겠지만 신검을 포함한 세 아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결국 세 아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금강을 죽이고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키는데 성공했다. 견훤은 술과 음식으로 잔치를 베풀어 지키던 군사들이 누그러진 틈을 타 나주로 탈출해 고려의 왕건에게 달려갔다. 이후 나라의 운명을 건 고려와 후백제의 전쟁. 고려의 대군 앞에 선 견훤을 바라본 후백제의 장군과 군사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결국 후백제도, 그리고 견훤도, 또 신검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백제와 신라, 그리고 후백제의 역사는 사라졌지만 절은 남아서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금산사로 가는 숲길은 역사의 길이다.



대흥사, 사당을 품은 절

전남 해남, 백두대간을 타고 북쪽에서 흘러오던 산줄기가 다시 한 번 고개를 크게 일으켜 두륜산을 만들었다. 그 산이 품은 절이 바로 대흥사(대둔사)다. 두륜산에 안긴 절이니 역시 숲길은 풍요롭고 또 아름답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 가도 숲의 싱그러움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숲 덕분에 이 동네는 구림리(九林里) 장춘동(長春洞)으로 부른다. 절의 이름을 알리는 이정표를 보고 걷기 시작하면 여러 나무가 어우러지는 아홉 개의 숲을 지나야 대흥사에 도착하는 것이다. 봄이 길다는 말은 어쩌면 늘 이 숲에 들어가면 봄을 느낄 수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대흥사는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그리 큰 절이 아니었다. 절의 내력을 적은 기록에는 신라며 통일신라를 얘기하지만 지금의 가람을 보면 대체로 조선 후기에 크게 일어난 절일 가능성이 높다. 가람배치를 보면 좁은 북원과 너른 남원으로 나뉘어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지금과 같은 거창한 가람을 가진 절이 됐을까. 그 배경에는 특별한 인물이 있다. 바로 서산대사(청허당) 휴정.(대흥사에는 서산대사와 뇌묵당 처영, 그리고 사명당 유정을 기리는 사당인 표충사가 있다. 모두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서 호국불교의 기치를 높인 분들이다.) 그런데 서산대사는 그 이름처럼 서산, 그러니까 묘향산에서 수행하며 머물던 분이다. 어떻게 대흥사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일까.
 
임진왜란이란 미증유의 난을 치른 뒤 서산대사는 만세에 무너지지 않을 땅으로 두륜산 대흥사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곳에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전하도록 했다. 이로써 조선의 선맥은 묘향산에서 두륜산까지 가지를 펼치게 됐다. 또 서산대사의 의발을 보관하는 절이니 조선 후기에 크게 중창됐던 것이다. 
 
대흥사의 표충사는 불교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장소다. 최근 돌아가는 우리나라의 정세와 맞물려 생각해 볼만한 곳이다. 서산대사의 인연으로 북한의 묘향산과 금강산(사명당이 수행하던 유점사)이 해남의 두륜산과 닿아 있는 내력은 가볍게 볼 수가 없다. 남과 북이 원래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절, 서산대사와 사명당은 남과 북의 역사를 모아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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