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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역사서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

『사기』의 진수를 모은 『사기선집』을 읽고



인간애를 담은 책



뇌 과학자들은 우리 뇌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아무런 의혹 없이 받아들이는 데는 21일이 걸린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완전히 습관으로 형성되려면 100일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또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1만 시간이 필요하며, 1만 시간은 신경망이 완전히 자리잡아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매일 꾸준히 10년 이상은 투자해야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기선집』을 읽으며 그의 위대한 삶에 다시금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작가 김원중이  『사기』의 진수 22편을 골라 책으로 엮은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사기』가 얼마나 위대한 고전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치욕스런 궁형의 고통을 이겨내면서 필생의 숙원사업으로 인간승리의 결과물인  『사기』는 마음 편히 읽을 수 없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는 1만 시간의 몇 배를 투자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이겨낼 수 있는 극한의 고통을 시간의 길이로 잴 수 있다면 말입니다.


『사기』는 고대 중국 시대부터 한나라 무제 때까지의 역사를 다룬 역사서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연대순으로 왕의 업적을 기록한 편년체 형식의 기존 역사서와는 달리, 본기, 표, 서, 세가, 열전으로 구성된 기전체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들은 역사 전반을 유기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한 사람의 작가가 연표를 비롯하여 환경,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종 제도에 관한 기록은 물론, 제후들의 흥망성쇠, 인간 탐구의 기록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저작물을 남기는 일은 앞으로도 그 유례가 없을 듯합니다.


만약 인생에 단 한 번만 여행할 수가 있다면? 여행하고 싶은 목적지로 인간에게 받은 깊은 고뇌와 상처를 역사서를 써내는 일생의 미션을 수행하며 승회시킨 사마천의 발길을 따라 가 보고 싶습니다. 그는 책에 수록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주인공의 삶의 흔적들을 썼기 때문입니다. 책상 머리에 앉아서 창작의 고통만으로 쓴 책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을 만나고 흔적을 찾아내며 인간애를 기록으로 남긴 위대한 실존 인물 사마천의 목소리가 행간마다 배어 있는 원본을 읽을 수는 없지만 수박 겉핥기일지라도 한 귀퉁이를 골라내 선집으로 엮은 이 책도 더운 여름을 서늘하게 보내는 청량음료 같아서 좋습니다.


『사기』의 진수를 모은 핵심 22편을 담은 『사기선집』


그는 전문가를 넘어 인간이 남길 수 있는 역사서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정신, 위대한 삶을 살다간 위인과 영웅들의 삶을 시대의 거울로 꼼꼼히 들춰보며 역사의 현장을 직접 발로 찾아가 조사하는 열정으로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남겼습니다.  종교와 철학을 넘어서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모습이 역사 속의 인물들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닮아 있으니, 인간은 과연 발전하는 동물인지 생각케합니다. 인간다움이란 과연 존재하기나 한 것인지, 희노애락과 생로병사의 회전목마를 타며 그 굴레를 벗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들이 곧 나의 모습임을 처절하게 알려줍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삼라만상 중에 특별한 존재도 아니고 특별할 수도 없다는 점, 세상에는 선하기만한 사람도, 악하기만한 사람도 없음을 가르쳐 줍니다. 어쩌면 사마천이 걸어간 길이, 그가 살아낸 길이 인생임을 무언의 손길로 가리키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가리킨 손 끝에 등장하는 그 많은 인물들의 언행을 통해 그는 자신의 사상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마천의 손 끝에서 되살아난 인물들은 어쩌면 사마천의 아바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의 넓고 깊은 탐구력과 호소력 짙은 문장력에 감동하고 부러울뿐입니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들리는 사마천의 목소리는 고뇌의 언덕을 오르는 이에게는 동반자로, 지혜의 숲을 거닐고 싶은 사람에게는 스승의 목소리로, 내리막길을 내닫는 인생에게는 버팀목으로 지지해주는 든든한 우군 역할을 해줍니다. 누군가의 글을 초서해서, 편집해서, 인용하고 번역해서 책이라는 물건으로 삶을 영위하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사마천이 보여준 기록물은 부끄러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합니다. 단편적인 글과 생명력 없는 일회성 글들이 난무하는 문학 시장에서 그는 단연 돋보이는 큰 바위 얼굴이 분명합니다. 특히 노자를 평한 대목에 이르면 사마천의 탁월한 안목에 거듭 놀라게 됩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한 인간의 기록물로 보기에는 너무나 높은 산인 사마천이 남긴 지혜의 보고를 차분히 들출 수 있는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며 숙제를 마칩니다. 1학년 아이들도 나도 요즈음 초서에 열심이기 때문입니다.



"노자가 귀하게 생각하는 도는 허무(虛無)이고, 무위(無爲)에서 변화에 호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지은 책은 말이 미묘하여 알기 어렵다. 장자는 노자가 말한 도덕의 의미를 미루어 풀어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쳤는데, 그 요지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신자(申子, 신불해)는 스스로 힘써 명분과 실질에 적용시켰고, 한자(韓子, 한비)는 먹물을 친 것처럼 법규를 만들어 세상의 모든 일을 결단하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였지만 너무나 각박하고 은혜로움이 부족했다. 이들 셋은 모두 노자의 도와 덕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니 노자의 사상이 깊고도 먼 것이다." 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