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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건강한 사회와 사회적 갈등의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사회적 갈등이 없으면 이는 곧 건강한 사회를 상징하는 것일까? 결론은 ‘아니다’이다. 건강한 민주사회는 다양한 의견이 서로 충돌하고 이견을 조정하여 이를 다수의 합의 과정으로 이끄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사회적 갈등이 없이 원만하게 돌아가면 그 사회가 건강함을 증거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찍이 세계사적으로 사회적 갈등이 없는 곳은 독재나 제국주의, 전체주의가 횡행하던 국가였다.

 

예컨대 독일의 나치정권을 보자. 그 사회가 진정 건강한 사회였던가? 광기에 찬 그들은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그리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값진 대가를 치렀다. 반 세대가 훨씬 지난 지금도 독일은 유대인을 포함한 전 세계인에게 사죄와 반성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단지 정치 지도자의 사과에 그치지 않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평화와 인권교육을 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은 전 세계의 용서와 지지를 얻었고 이젠 경제대국으로서, 정치 선진국으로서의 역할을 당당하게 수행하고 있다. 나아가 통일된 독일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의 모든 영역에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국민적 통합을 이루고 사회적 갈등을 완화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바탕에는 교육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주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갈등의 유무는 기본적으로 교육과 연계되어 있다. 교육이 부재하면 개발이나 사회혁신에서 한계를 노출한다. 예컨대, 질 낮은 학교 교육을 받거나, 아예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뭘 모르는지조차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아주 기본적인 인권에 대해서도 교육을 받지 못한다. 또 문맹률이 높아서 어떤 정부 정책이 있는지도 모른다. 외부에서의 도움이 있어도 그것을 믿고 따를지도 모른다. 또 지역의 다양한 NGO 활동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하다. 왜냐면 교육의 부재로 인해 사람들의 판단력이 작동되지 못하니 잘못 이해하거나 정보 왜곡 등이 발생해도 문제 제기를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철학자 파울루 프레이리(Paulo Freire)는 브라질의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교수법을 말하면서 가난한 노동자들이나 천민 계층의 사람들이 어떻게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또 그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교육시스템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언급한 바가 있다. 프레이리는 그런 사람들은 자유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함께 오는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을 상당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즉, 자유와 선택과 변화의 산물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로인한 두려움과 불신이 크다는 것이다.

 

사회혁신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내부에서 갈등이 발생해야 한다. 그런데 사회적 무지는 갈등 자체를 부재하게 만든다. 개발도상국가를 보라.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제기하지 못한다. 예컨대 ‘왜 물이 안 나오지? 왜 우리는 학교에 다닐 수 없지? ‘정부는 왜 가난한 동네에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지? 왜 우리 마을엔 학교가 없지? 등등의 질문 자체가 없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줄 수 있는 게 학교인데 학교가 없거나 교육의 질이 너무 낮은 것이 문제다. 아직도 그들 중에는 “학교 가면 농사지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러면 우리는 다 굶어 죽는다”고 여자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이것이 교육이 제공되지 않아 사회적 갈등 자체가 없는 대표적 사례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과거 영국의 <더 타임스>의 우려와는 다르게 쓰레기더미에서 피어난 장미꽃이다. 이는 교육에 의해 거둔 일종의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따라서 우리의 높은 교육열은 현재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의 원천이며 이는 더욱 건강한 민주사회를 향한 여정임을 충분히 자랑스러워하자.